과학

[인싸_이드] '합성' 마약, 진짜 하면 안 되는 이유

조주연 기자

piseek@tbs.seoul.kr

2022-12-02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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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 ]한다

최근 이 빈칸에 생소한 단어들이 들어갑니다.

마약을 디자인한다, 마약을 합성한다.

마약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일반적으로 식물에서 채취하거나 추출하는 천연마약을 떠올립니다.

양귀비 열매에서 추출한 액으로 만든 아편, 아편을 정제한 모르핀. 또 최근 드라마 <수리남>을 통해서 널리 알려진 코카나무의 잎으로 만드는 코카인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최근 가장 문제로 떠오른 것은 이들과는 다른 합성마약입니다.

합성마약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았던 물질을 인간이 화학적으로 만들어낸 마약이죠.

더 강하게, 더 싸게, 더 은밀하게 말입니다.

국내에서 2~3년 전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펜타닐이 대표적인 합성마약입니다.

펜타닐은 말기 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는 강한 진통제지만, 동시에 중독성은 헤로인의 100배에 달하고, 치사량은 2㎎에 불과할 정도로 치명적인 마약입니다.

▶ 합성마약, 한 끗 차이로 10배 더 강하게

합성마약의 위험성은 크게 두 가지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는 화학적인 변형을 거친다는 것 자체.

화학 구조를 살짝만 바꿔도, 완전히 다른 마약이 됩니다.

모르핀에 초산을 넣고 끓여 만든 헤로인이 대표적이죠.

아세틸기(Acetyl) 2개가 붙자, 물과 쉽게 결합하지 않는 소수성을 띠게 됐습니다.

그리고 뇌 등 중추신경 계통에 빠르게 침투해 모르핀보다 10배 이상 강한 반합성 마약이 됐습니다.

마약을 술과 같은 것에 타서 먹으면 더 위험하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마약이 알코올과 화학 반응을 일으키면 예상치 못한, 또 전혀 다른 부작용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신경에 작용하는 물질은 아주 적은 양도 아주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합성마약은 '마약을 디자인하듯 섞는다'라고 표현할 정도로 이 위험성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김선춘 과장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독성학과
"물질이라는 게 구조가 조금만 바뀌어도 독성이 확확 바뀔 수 있거든요. 사실 마약으로서도 위험하지만, 독성 과학적인 관점에서도 되게 위험하고…"

▶ 합성마약, 안전하게 만들 '필요'가 없다

합성마약이 위험한 또 하나의 이유는 안전성 검증 절차가 생략된다는 점입니다.

합성마약 생산을 위한 화학 변형의 목적은 다양합니다.

중독성, 환각성을 높이기 위해, 생산 단가를 낮추기 위해, 검출을 피하기 위해.

'안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명제는 이 목적에 밀리기 마련입니다.

김선춘 과장 /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독성학과
"합성마약류가 위험한 건 그 자체도 위험하지만, 예를 들어 어떤 의료용 마약액 같은 경우에는 다른 독성 실험들, 그러니까 작용 이외에 발암성, 간 독성, 신장 독성에 관련된 여러 실험을 해서 그런 쪽은 안전하다고 입증이 된 거예요. 근데 합성된 물질들은 전혀 그런 실험이 안 됐기 때문에 건강에도 훨씬 위험하죠."

만들어진 결과물의 안전성 검증뿐만 아니라 합성하는 과정에서도 충분한 실험과 시험이 필수적입니다.

이 부분이 미흡하면 약을 만들려다가도 독을 만들어버릴 수 있죠.

역사상 최악의 의약품 사고로 불리는 '탈리도마이드' 사건이 그 대표적인 안타까운 사례입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임산부들의 입덧 방지용 약으로 판매됐는데, 이 약을 먹은 후 기형아를 출산한 사례가 전 세계에서 1만 건 넘게 확인돼 판매가 중지됐습니다.

문제는 탈리도마이드의 '거울상 이성질체'였습니다.

거울상 이성질체는 결정 모양, 비중, 끓는점과 같은 물리적, 화학적 성질은 모두 같은데 거울 대칭 구조를 갖는 물질입니다.

서로를 거울에 비춰보면 같은 모양이지만, 아무리 회전시켜도 겹칠 수 없는 왼손과 오른손처럼 말이죠.

정근홍 교수 /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탈리도마이드 구조가 거울상이 2개가 다른 구조가 있는 것으로 밝혀졌고, 그중에 하나는 입덧 치료제가 아니라 한마디로 사생아(를 유발한다)든지 잘못된 역할을 하는 약으로 밝혀져서…. 그때부터 이런 거울상 이성질체를 무조건 분류해서 합성해야 한다(고 알게 된 거죠).“

제대로 통제하지 않으면 독이 되는 위험한 거울상 이성질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퍼져있는 마약, 메스암페타민, 일명 필로폰, 히로뽕이 거울상 이성질체를 가집니다.

약으로도 쓰이는 필로폰이 마약으로 만들어지면 위험해지는 이유가 이겁니다.

정근홍 교수 / 육군사관학교 물리·화학과
"우리가 진통제로 쓰는 필로폰은 이 물질의 구조를, 거울상 이성질체까지도 완벽하게 고려를 한 상태에서 완전히 순수하게 만드는 거죠. 근데 많이 알려진 합성마약들 몇 가지는 이 거울상 이성질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문가가 아닌 상태에서, 전혀 컨트롤하지 못한 상태로 만들기 때문에 이 물질들이 탈리도마이드처럼 어떤 역할을 할지 모르는 거죠."

▶ 합성마약은 독이다

마약은 독입니다.

비유가 아닙니다.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전혀 컨트롤이 안 되는 아주 강한 독약을 먹는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관련 물질들의 코어 구조들이 다 독이거든요.“

앞서 맨 처음 언급한 펜타닐은 지난해 미국에서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고, 2002년에는 러시아 모스크바의 극장 인질극 사건 당시, 진압용 ‘화학 무기’로 사용됐습니다.

소셜 미디어 계정과 대가로 낼 암호화폐만 있으면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고 유혹하는 합성마약. 호기심에 딱 한 번만, 친구 따라서 딱 한 번만 해보려다 그 독 때문에 아예 삶 자체를 대가로 지불할 수 있습니다.

합성마약은 ‘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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