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노동위탁 예산 대폭 삭감…이동 노동자 쉼터 운영 ‘휘청'

서효선 기자

hyoseon@tbs.seoul.kr

2023-01-1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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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 】
"저는 지금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나와 있습니다.

배달이 일상화되면서 요즘 식당이나 카페에는 배달기사들이 자주 오가는데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배달은 멈추지 않는데, 그렇다면 배달기사들은 어디서 쉬는 걸까요?

바로 제 뒤로 보이는 이곳이 배달기사나 대리기사 등을 위해 마련된 휴게 공간입니다.

제가 직접 들어가서 이동노동자들을 만나보겠습니다.

【 기자 】
마포구 합정에 있는 휴서울이동노동자 쉼터입니다.

배달기사와 대리기사 등 이동 노동자에게는 휴식공간으로, 번역가나 유튜버 같은 초단기 노동자들에게는 작업공간으로 열려있습니다.

【 인터뷰 】지하철 택배 기사
"우리가 일하다가 쉬는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럼 여기 와서 쉬면서 신문도 보고, 책도 있으니까 책도 보고, 커피라든지 음료수 이런 게 다 준비가 돼 있어요."

여기 말고도 서초와 북창, 상암, 은평 등 4곳에 쉼터가 더 있습니다.

[휴서울이동노동자쉼터<사진=TBS>]  

노동자들에게 법률·금융 상담 등 다양한 무료 서비스도 제공해 왔는데 올해는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쉼터를 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 운영 예산을 대폭 삭감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35억 8,000만 원이었던 센터 예산은 24억 7,000만 원으로 10억 원 이상 줄었습니다.

덩달아 센터가 운영하는 휴서울이동노동자 쉼터 예산도 지난해의 3분의 1수준이 됐습니다.

자치구 노동복지센터와 역할이 겹치고, 쉼터 이용률이 저조하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용률이 저조한 근본적인 원인은 홍보 부족으로 인한 낮은 인지도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강남역 일대에서 10명 안팎의 배달기사들을 만났는데 쉼터의 존재를 처음 듣는다는 답이 많았습니다.

쉼터를 알고는 있지만 쉼터의 수가 적고 운영 시간이 짧아 자주 찾기 어렵다고 말한 기사도 있었습니다.

【 인터뷰 】김정훈 / 5년 차 배달기사
"너무 부족한 것 같아요. 구별로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데. 잠깐 쉬었다 가고 싶은데, 30분씩 이동할 수는 없으니까요."

【 인터뷰 】심정모 / 19년 차 대리기사
"토요일, 일요일에는 문을 닫잖아요. 저희는 그럼 갈 데가 없어요. 축소나 폐쇄보다도 더 개방되고 늘렸으면 좋겠다…."

5개의 쉼터 모두 건물 2층 이상에 있고, 오토바이 주차 공간이 없어 이용하기 어렵다는 답도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 쉼터는 휴식공간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 인터뷰 】장규환 / 8년 차 대리기사
"대리기사라는 게 회사에 직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윗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따로 배울 사람이 없어요. 이런 분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간에 와서 일을 시작하면 더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거죠."

【 인터뷰 】김정훈 / 5년 차 배달기사
"사람이 로봇은 아니잖아요. 쉬어가면서 해야지. 누군가 신경을 써야 하는데 플랫폼 기업들은 잘 신경을 안 써요. 본인들은 노동자들한테 노동 강요를 하지 않기 때문에 휴식 시설을 지원할 계획이 없다…."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쉼터를 조성한 만큼 다른 지자체보다 앞장서서 예산을 투입해 쉼터 확대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 인터뷰 】정재민 위원장 / 정의당 서울시당
"광명시의 경우에는 이동노동자 쉼터를 토요일까지 연장해서 운영한다고 알고 있고요. 거제시 같은 경우에는 지역에 있는 주요 편의점과 협약을 맺어서 이동노동자들이 편의점에서 적정한 쉼을 가질 수 있게끔 했다고 확인했습니다. (서울시가) 예산을 줄일 게 아니라 오히려 서울에 맞게 더 늘려가는 것을 시행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동 노동자들의 휴식권 보장은 노동계의 오랜 과제입니다.

하지만 이들을 위한 예산은 되려 대폭 삭감되면서 취약노동자들을 위한 노동복지 사업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울시의 노동 복지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취약노동계층의 버팀목이 됐던 지원 사업들을 운영하는 데 빨간 불이 켜졌습니다.

[셔틀버스이동노동자 쉼터<사진=TBS>]  


▶ 예산 삭감으로 이동노동자 쉼터 운영에는 당장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Q&A로 정리했습니다.


Q. 이동노동자들을 위한 쉼터가 서울 시내에 몇 군데나 있고 또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건가요?

A. 현재 서울의 이동노동자쉼터는 7곳입니다. 먼저 제가 다녀온 5곳은 휴서울이동노동자쉼터라 불리는 곳들로 서울시가 민간 위탁을 통해 운영하고 있고요. 나머지 2곳 쉼터는 서대문구와 강동구에서 자체적으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Q. 서효선 기자가 현장에서 만난 이동노동자들은 쉼터를 늘려달라고 하는데 정작 이용률은 높지 않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예산이 삭감된 건가요?

A. 네, 이용률이 낮은 것도 이유인데요. 오세훈 서울시장이 재선 이후 줄곧 강조해오고 있는 민간위탁 사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오 시장은 최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민단체를 표방한 채로 이념 성향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사업이 '복지 정책'으로 포장됐다"고 말하면서 민간위탁 사업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민간위탁 사업에 대해 불신을 가지고 있는 건데, 쉼터를 운영하는 서울노동권익센터도 위탁 운영되고 있습니다.

Q. 현재 예산대로라면 쉼터 운영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 건가요?

A.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던 법률 상담이나 인문학 수업 같은 각종 교양수업 등은 중단되거나 대폭 축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5월 종합소득세 신고를 앞두고 실시했던 세무 교육도 못하게 됩니다. 쉼터에 비치된 안마의자나 PC 같은 각종 임대 물품도 유지가 불투명하고 여름철 냉수, 겨울철 핫팩 등 편의용품 제공도 어렵습니다.

올해 서울노동권익센터 예산은 24억7천만 원인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10억원 이상 줄었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바로는 올해 센터 예산 가운데 임대료 등 운영비를 제외한 순수 사업비만 2,900만 원 수준, 지난해의 4분의 1 수준입니다. 쉼터를 간신히 유지하는 것이고, 이동노동자들이 요구하는 것처럼 운영 시간을 늘리거나 쉼터를 확대하는 것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이동노동자쉼터에 비치된 안마의자<사진=TBS>]  

Q. 일단 7곳에 있는 쉼터부터 노동자가 외면하지 않도록 해야 시민의 세금을 제대로 쓰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용률을 높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

A. 전국 쉼터 가운데 방문객이 많은 곳으로 꼽히는 고양시 이동노동자휴다방같은 경우는 문화·상업시설 인근에 위치해 있는데요. 주변에 음식점과 상점이 많다보니 콜이 들어오길 기다리며 쉬는 배달노동자나 대리운전 노동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만큼 쉼터는 접근성이 생명이라는 거겠죠. 경남 거제시 같은 경우에도 이동노동자들의 접근성이 높은 편의점과 협약을 맺어서 노동자들의 휴식을 지원하고 있고요. 광명시는 새해부터 이동노동자쉼터 운영 요일을 토요일까지로 확대한다고 합니다.

서울시 역시 이렇게 이동노동자들의 업무 환경에 맞춘 쉼터를 조성하려는 노력, 그리고 맞춤형 홍보계획도 필요해 보입니다.

취재 : 서효선
영상취재 : 윤재우, 전인제
그래픽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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