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싸_이드] 곤충의 습격, 살충제로는 못 막는다

최양지 기자

y570@tbs.seoul.kr

2022-08-02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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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곤충의 도심 습격

이달 초 도심에 까만 벌레떼가 나타났습니다.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덕양구 등 수도권 서북부 일대를 뒤덮은 벌레의 정체는 이른바 러브버그.

국내종 털파리로, 이동할 때 암수가 함께 다녀 붙여진 이름입니다.

몇 년 전부터 장마철에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곤 했는데, 올해는 그 개체 수가 지금껏 보지 못한 수준이었습니다.

【인터뷰】김연재 / 은평구 갈현동 주민
“올해는 작년(2021년)과 비교가 안 될 만큼 심각한 거예요.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이 창 문틈으로 들어오니까. 그래서 이거 뭔가 잘못됐구나”

【인터뷰】김현숙 / 덕양구 지축동 주민
“문을 열기가 겁이 날 정도로 너무 많아서 모기약을 한 통을 다 쓰고… 문도 못 열어요, 더워도. 집안에 날아다니면 소름이 끼칠 정도예요.”

하루에 500건 넘는 민원이 폭주하자 지방자치단체는 주말도 반납하고 긴급 방역에 집중했습니다.

【인터뷰】박재균 과장 / 은평구 보건소 보건의료과
“(저희 구 같은 경우) 산이 많이 있는 지역이다 보니까 장맛비가 많이 내렸기 때문에 장마 기간에 많이 부화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봄철 긴 가뭄에 이은 장맛비는 비단 올해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서울과 경기 지역의 가뭄은 지난해에도 전국 평균을 훌쩍 넘었습니다.

그렇다면 러브버그가 갑자기 나타난 이유는 무엇일까?

2. 생태계 파괴의 증거, 대발생

러브버그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곤충의 대발생은 해마다 반복되고 있습니다.

2009년 경기도 지역 과수원 작물에 큰 피해를 준 돌발 외래 해충 미국 선녀벌레부터,

2011년 남양주 도심에 파고든 동양하루살이.

2017년 서울 강북구와 도봉구 일대엔 난데없이 하늘소가 대규모로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충북 지역을 중심으로 2019년에는 대표적인 산림 해충인 매미나방이 급증했고,

2년 전인 2020년 인천에서는 깔따구 유충이 나와 수돗물 공급이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같은 해(2020년) 은평구에는 대벌레가 출몰한 데 이어 올해(2022년) 러브버그까지 대발생했습니다.

이렇듯 돌발 해충이 는다는 것은 생태 환경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의미입니다.

【인터뷰】한영식 대표 / 곤충생태교육연구소
“원래 생태계는 하나가 급증을 하는 거는 생태계 평형이 깨졌다는 의미에요. 하나의 종이 급증했을 때 그 종을 먹어 치우는 천적들이 많이 있다면 급증 못 하고 줄어들겠죠. 현재 전 지구적인 생태계 자체가 건강성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 자체가 무너져 있는 상황이어서…”

3. 방역만이 능사? 그 결과는…

벌레가 나올 때마다 가장 우선 하는 일은 살충제를 통한 방역.

설사 우리 환경에 이로움을 주는 곤충일지라도 보기 좋지 않거나 개체 수가 많아 생활에 불편함을 준다면 제거 대상이 됩니다.

러브버그도 진드기를 박멸하는 등 환경 정화에 도움을 주는 익충이었지만, 시민 불편을 이유로 방역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살충제는 잠깐의 불편을 줄여줄 뿐 환경에는 더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지난 2020년 대벌레가 들끓었던 은평구의 이말산을 다시 찾았습니다.

이곳은 2020년 대벌레를 퇴치하기 위해 약제 살포를 포함한 대대적인 방역이 이루어졌던 곳입니다.

방역의 결과 과거와 지금의 생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대벌레는 2년 전과 비교해 숫자가 확연히 줄었지만 다른 곤충들 역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대벌레를 잡으려고 설치한 끈끈이 트랩에는 오히려 엉뚱한 곤충들이 더 많이 잡힌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인터뷰】한영식 대표 / 곤충생태교육연구소
“원래 이말산은 1시간 정도 보면 70~80종은 충분히 나왔던 곳이거든요. 근데 지금은 한 30종도 안 되는…. 이 정도면 실질적으로 우리 앞에 있는 공원에서 보는 정도밖에 안 돼서, 이게 과연 이말산이 산인데 산이라고 붙일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듭니다. 대벌레만 죽이는 약제라는 건 없어요. 보통 포괄적인 약제를 많이 쓰다 보니까 실제로는 해충이 아닌 이말산에 사는 다른 곤충까지 함께 죽는 거거든요. 이런 곤충의 다양성이 부족해지면 그 곤충을 먹고 사는 양서파충류나 새들도 먹이가 없어서 제대로 이 산에서 서식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 되기 때문에 생물 다양성이 상당히 위축돼서 생태 환경이 나빠지는 부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벌레 하나를 잡으려고 온 산의 생태계를 다 망가뜨렸던 셈입니다.

4. 선택이 아닌 필수‘공존’

곤충의 대발생은 근본적으로 기후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의 온도가 오르면서 장마가 길어지고 그로 인해 습도가 높아지자 본래 축축한 곳에 사는 털파리에게는 아주 살기 좋은 조건이 됐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곤충의 대발생은 더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인터뷰】 한영식 대표 / 곤충생태교육연구소
“현재 기후가 달라지니까 주기적으로 계속적으로 습도가 높은 조건들이 유지된다면 털파리의 발생량은 일단 기본적으로 좀 높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드는 거죠. 기후가 변하면서 (그에) 맞춤한 종들이 옛날에 한두 번만 대발생했다면 지금은 일상적으로 대발생할 수 있는 그런 환경적인 조건이 기후 변화와 연관이 되는 겁니다.”

또 인간에 의한 개발로 자연 훼손이 계속되면서 곤충의 서식지가 줄어든 것도 대발생의 원인입니다.

【인터뷰】이시혁 교수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생명공학부
“인간이 서식하는 면적이 넓어지다 보니까 곤충이 서식해야 할 자리를 다 뺏은 거죠. 어디론가 가서 살아야 하는데 없으니까 계속 인간이 사는 공간까지 들어와서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잖아요. 언제든 곤충이 대발생 해서 인간과 충돌할 수 있다.”

4년째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도 예상치 못하게 우리를 닥쳤습니다.

거주지 파괴로 인한 곤충과 인간의 충돌이 잦아지는 상황에서 매번 살충제로 인해 곤충의 다양성마저 파괴된다면 이후 나타날 대발생이 인간에게 얼마나 치명적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인터뷰】이시혁 교수 /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생명공학부
“코로나 이슈도 엄밀히 보면 인간의 거주지가 확장이 되면서 결국에는 야생동물이 설 자리가 줄어든 거잖아요. 과거에는 동물과 인간의 서식처가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동물에만 (바이러스가) 감염이 됐는데 지금은 섞여 있으니까 인간에도 감염이 될 수 있다는 거죠. 비슷한 원리로 곤충도 마찬가지로 이렇게 생각할 수 있고요.”

앞으로는 변하는 기후에 맞춰 생태를 면밀하게 검토해 다양성을 회복할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는 곤충의 박멸이 아닌 곤충과의 적응과 공존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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