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행 중인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와 오는 5월 출시 예정인 국토교통부의 K패스, 경기도의 더(The) 경기패스까지.
다양한 교통비 절약 선택지 속에서 어떤 것이 더 유리한지 골라주는 정보글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한 달에 몇 회 정도 타는지, 주로 타는 버스는 무엇인지 등 여러 조건을 따지며 조금이라도 더 저렴한 방법을 알려줍니다.
집은 경기도, 직장은 서울에 있는 기자도 이러한 교통 복지 정책에 관심이 큽니다. 주 6일 버스를 타고, 서울에서 일하고 수도권 곳곳에서 놀며, 한 달 평균 15만 원의 교통비를 내는 나의 생활에 맞는 교통카드는 무엇일지 고민합니다.
▶ 계산기 두드려야 하는 교통카드, 최선입니까?
발행기관은 다양한 교통카드가 지자체의 교통 특성이 반영된 지역 맞춤형 정책, 이용자의 선택권 확대라고 설명합니다. K패스는 60회까지 전국 모든 대중교통 이용 요금을 20~53% 환급해 주고, 더 경기패스는 경기도민에게 횟수 제한 없이 요금을 환급해 주며, 기후동행카드는 6만 원대의 정액권으로 서울 버스와 지하철을 무제한으로 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용자의 입장에서는 이용 기준이 달라 오히려 체감할 수 있는 혜택이 제한되고 혼란스럽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옵니다. K패스는 60회까지'만' 환급하고, 더 경기패스는 경기도민'만' 사용할 수 있으며, 기후동행카드는 서울 교통수단'만' 해당합니다.
지난 1월 22일, 정부와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지자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대중교통비 지원 혜택을 높이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K-패스, 더 경기패스, I-패스의 성공을 위해 수도권 지자체 및 국토부와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고,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토부, 서울시, 인천시와 협력해 수도권 시민을 위한 공동의 교통비 지원 정책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만'의 장벽을 없애 혜택을 높인, 가장 강화된 형태의 '협력'인 교통카드 자체의 통합은 왜 이뤄지지 않는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대중교통 요금지원 국토부·수도권 지자체 합동 기자설명회 (2024.1.22) <사진=연합뉴스>
▶ 서울-경기는 하나의 생활권
서울시와 경기도는 행정구역은 다르지만, 이미 하나의 생활권입니다. 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경기에서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125만 6,000명, 서울에서 경기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52만 3,000명으로 집계됐습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수도권 통행량을 분석한 경기연구원 자료에서는 하루에 약 199만 명이 경기도에서 서울로 통근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버스는 668개 노선(서울시 면허 111개, 경기도 면허 557개)에 달합니다.
수도권은 일상을 공유하는 생활권이고, 그러한 일상의 기반에는 편리한 교통이 있습니다. 이러한 공감대가 낳은 정책이 수도권 어디서나 버스, 지하철 환승을 가능하게 한 수도권 통합환승제입니다. 2004년 7월 서울버스와 수도권 전철 간 통합환승할인제를 시작으로, 2007년 경기버스, 2008년 광역버스, 2009년 인천버스로 확대 시행됐습니다. 재정적 부담, 정치적 이해관계 등 걸림돌은 있었지만, 당시 지자체장이었던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 안상수 인천시장은 5년간 협의와 협력을 통해 하나로 '통합'된 환승제를 마련했습니다.
수도권 대중교통 통합환승할인 체결식 (2007.6.8) <사진=연합뉴스>
▶ 통합 안 된 교통카드…불편은 사용자 몫
하지만 2009년 환승제도로 하나가 됐던 서울시와 경기도는 2024년 교통카드에선 각자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1월 기후동행카드 출범 이후 청년층 할인 등 혜택을 계속 확대해 나가고 있고, 경기도는 오는 5월 더 경기 패스 출시를 목표로 준비 중입니다. 현재는 기후동행카드만 사용되고 있는 셈인데, 서울시와 경기도의 합의가 이뤄지지 못해 발생하는 현장에서의 삐걱거림은 사용자의 몫입니다.
기후동행카드를 이용해 서울에서 지하철에 승차했더라도 경기도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역무원을 불러 서울 외 구간 이용료를 따로 납부해야 하고, 광역버스와 서울시 면허가 아닌 서울 외 시내버스 또한 갈아탈 수 없습니다. 기후동행카드를 쓸 수 있는 버스인지, 무제한 승차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구간인지 따로 확인해야 하는 번거로움에 더해 추가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경우도 생깁니다. 수도권 통합환승제도가 없었던 2000년대 초반처럼 서울과 경기를 넘나들며 환승도 불가능합니다. 기후동행카드가 출시되기 전인 지난해 9, 10월, 서울시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3명 중 1명, 28.2%가 '적용 구간, 교통수단 확대'를 개선이 필요한 부분으로 지적했지만, 출시 한달 차인 지금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경기도 지하철 역 기후동행카드 이용불가 안내 <사진=TBS> ▶ 서울시와 경기도 입장은 평행선기후동행카드 시범 기간 제기되는 불편·불만의 상당수는 서울시와 경기도가 합의하지 않는다면, 사실상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서울시는 경기도에 기후동행카드 참여를 제안했지만, 경기도는 각 시·군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겠다고 답했습니다. 이에 따라 광역지자체인 서울시와 경기도 간의 합의가 아닌, 기초지자체 단위에서 업무 협약이 개별적으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현재 기후동행카드에 동참한 서울 외 수도권 지자체는 인천시, 경기도 김포시, 군포시, 과천시 등 4곳입니다.서울시는 아쉽다는 입장입니다. 서울시 도시교통실 관계자는 "경기도 차원에서 참여를 결정해 주면 건설적이고 열린 논의가 수월하게 진행이 될 텐데 아쉽다"며 "(경기도와는) 원론적인 동의가 되지 않아 예산이나 시스템, 기술 등 세부 논의를 시작하기 어려운 단계"라고 말했습니다.경기도는 더 경기패스 출시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입니다. 경기도 교통국 관계자는 "서울시보다 대중교통 요금 체계가 다양한 경기도에서 정기권 방식은 쉽지 않다"며 "K패스 사업 기반으로 한 더 경기 패스 사업을 진행하자고 정책 결정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경기 남부 지자체들이 개별적으로 기후동행카드에 동참하고 있는 움직임과 관련해서는 각 지자체의 자율에 맡기되, 참여에 따른 예산과 행정 절차 등은 자체적으로 해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서울시와 경기도, 인천시는 지난해 말 관련 정책 담당자와 연구원 등이 모여 수도권에 공통으로 적용할 교통 지원 정책을 함께 모색하고, 공동 연구를 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올해 1월에는 국토교통부가 지방자치단체 간 문제를 조정하고, 통합을 위해 협의를 할 수 있도록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놓았다고 언급했습니다.하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1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경기도 동참 여부는 경기도지사의 선택만이 남았다"고 지적했고, 경기도는 바로 다음 날인 22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강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수도권 시민에게 혼란을 야기하지 말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어 23일에는 오 시장이 다시 한번 "경기도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게 바람직하다"며 경기도의 참여를 촉구했습니다.
기후동행카드 사용 점검 나선 오세훈 서울시장 <사진=서울시> 더 경기패스 답변하는 김동연 경기도지사 <사진=연합뉴스>
▶ '기후'동행이라면 경기도민 잡아야
사용자에게 직접 혜택을 주는 '교통비 부담 완화' 부분이 주목받고 있지만, '기후'동행카드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 또한 이번 정책의 주요 목표입니다. 민생, 교통 복지 차원을 넘어 기후위기 대응 측면까지 고려한다면 기존의 대중교통 이용자에게 기후동행카드, 더 경기패스를 사용하도록 하는 것 이상으로, 자가용 이용자들이 이번 계기로 버스, 지하철을 타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그 설득의 수단은 자가용 이용이 주는 편안함을 넘어설 만한 정책적 편리함과 혜택입니다.
국토교통부의 ‘탄소공간지도 시스템’을 보면, 서울시 주변에서 탄소 발생이 가장 많은 곳은 서부간선도로, 경인고속도로,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 분당수서간도시고속화도로 등 서울과 다른 지자체를 연결하는 구간입니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199만 명 중 절반이 넘는 100만 명은 승용차를 타고 이 구간을 지납니다. 하지만 이들에게 자가용 대신 버스, 지하철을 타도록 설득할 카드는 아직 없는 셈입니다. 대표적인 환경단체, 그린피스도 수도권 통합 교통카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는 이유입니다.
▶정치 말고 사람·환경 생각하는 '통합'
독일의 월 49유로 정액제 교통권, 도이칠란드 티켓(D-Ticket)은 환경과 경제를 모두 잡은 성공적인 사례입니다. 성공 요인으로는 복잡하게 혜택을 계산할 필요가 없고, 여러 지역에서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꼽힙니다. 전문가들은 현실적인 생활권에 걸맞게 통합된 수도권의 교통카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녹색전환연구소 고이지선 연구원은 "독일이 49유로 티켓을 도입할 때도 넓은 지역에서 규모 있게 효과를 발휘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며 "우리나라 수도권은 교통 체계 자체가 사실상 하나의 단위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에 협의해 통합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독일의 '49유로 티켓'은 그 내용뿐만 아니라 해당 티켓이 나오기까지 이뤄진 협의 과정도 배울만합니다. 명확한 숫자로 나타나는 지원 비용, 예산 손실보다, 기후위기 대응, 교통 복지 실현, 이동권 향상 등이 가져오는 사회적 효과에 중점을 두고 결정했습니다.
독일의 49유로 도이칠란트 티켓 <사진=로이터 연합뉴스>오세훈 서울시장은 23일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서울로 출퇴근, 등하교하는 경기도민을 서울시민으로 간주하고, 서울시 재정 투입까지 감수하며 도와주겠다는 입장이라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경기도민이 서울시로 출퇴근할 때 기후동행카드를 쓰면, 서울시가 최소한 60%를 분담하겠다는 겁니다. 정치적인 이유를 제외하면, 사실상 통합의 가장 큰 장애물로 여겨졌던 '재정' 문제에 대한 지자체장의 통 큰 양보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서울시와 경기도가 합의가 된 부분은 없습니다. 이미 합의를 이뤘다고 해도, 지자체별 분담금 등 재정 문제, 관련 시스템 개발, 행정적 절차 등을 논의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텐데, 지금 수도권 지자체들은 각자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서로를 '설득'하느라 시간과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시민 누구도 '비통합' 교통카드 정책으로 배제되지 않도록, 교통카드 정책이 제2의 수도권 통합환승할인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치를 넘어 사람과 환경을 생각하는 결정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