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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화 '광주비디오' 이조훈 감독, "취재한 자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 사라진 4시간 찾고 싶었다"

TBS 김지윤의 이브닝쇼

tbsevening@naver.com

2020-07-10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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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 인용 시 TBS <김지윤의 이브닝쇼>와의 인터뷰 내용임을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 방송 : 2020. 07. 09. (목) 18:18~20:00 (FM 95.1)
● 진행 : 김지윤 박사
● 대담 : 영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이조훈 감독


- 영화 <광주 비디오...>, 80년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4시간을 추적
- 소재가 된 '광주 비디오', 교민들이 5.18 외신 보도 영상을 재편집한 것
- 계엄군에게 폭행 당한 아버지... 기록에는 계엄군 괴롭힌 '난폭자'로 남아
- 취재 응한 시민들, 고통스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참여... 상황 재연에도 직접 참여하기도
- 잔인한 장면을 많이 뺀 이유? 12세도 볼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다


▶ 김지윤 :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다음 주에 개봉하는 영화가 한 편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세상에 알리기 위한 기록물, '광주 비디오'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1980년 5월 21일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가 있었던 4시간은 당시 쓰러진 사람을 옮기는 모습의 사진 단 한 장만이 유일하기 때문에 그 순간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사라진 4시간을 추적하는 영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의 이조훈 감독과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안녕하세요.

▷ 이조훈 : 예, 안녕하세요.

▶ 김지윤 : 감독님, 간단하게, 저는 감독님 필모를 보긴 했거든요. 소개를 좀 해 주세요, 본인에 대해.

▷ 이조훈 : 다큐멘터리 영화를 몇 년간 계속 만들어 왔는데요, 민영화 문제를 다루는 《블랙딜》이라든가 박정희 시대에 청년들을 납치해서 간척사업을 시켰던 《서산개척단》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기도 했었고요, 이번에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 김지윤 : 감독님이 궁금하신 분들은 TBS FM 유튜브로 들어오시면 보이는 라디오로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영화 소개를 부탁을 드릴게요.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 비디오 속에 4시간이 없다라는 이야기인가요?

▷ 이조훈 : 예, 맞습니다. 80년 5월에 광주에서는 민주화항쟁이 있었잖아요. 약 일주일, 열흘 정도의 항쟁 기간 동안 외신기자들이 와서 그 항쟁들을 촬영을 했고 그거를 우리나라에서는 방송을 못 했지만 일본 NHK나 독일, 그리고 미국에서는 뉴스나 다큐멘터리로 방송이 됐거든요. 그것을 통해서 외국에 계신 교민들이 항쟁의 소식을 접하고 국내에 연락을 했는데 국내는 연락이 또 안 됐어요, 그 당시에는. 그래서 국내에 계신 국민들은 오히려 항쟁의 소식을 몰랐기 때문에,

▶ 김지윤 : 무슨 일이 일어난지 모르고 있고?

▷ 이조훈 : 모르죠. 그래서 교민들이 그런 뉴스들을 모아서 다시 재편집을 한 다음에 비디오를 만들어서 국내로 반입을 시킨 거예요, 역으로.

▶ 김지윤 : 역으로 수입이 된 거네요, 그러니까?

▷ 이조훈 : 예. 그래서 항쟁의 진실을 알리게 됐고, 그게 85년 무렵에는 성당이나 대학가를 중심으로 많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광주의 진실을 알게 되고, 그것에 분노해서 길거리에 나와서 민주화를 요구했던 게 또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던 그게 기폭제가 됐던 것이 ‘광주비디오’였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광주비디오, 그런데 이 ‘광주비디오’하고 ‘사라진 4시간’이란 부제가 붙었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이 광주비디오에서 4시간이 없다라고 들리거든요.

▷ 이조훈 : 광주비디오는 외신들이 와서 촬영을 하긴 했고, 한국의 기자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항쟁 기간 중에 5월 21일 도청 앞에서는 집단 발포가 있었는데, 집단 발포가 시작된 시점이라고 알려진 1시부터 그다음에 끝나고 나서 많은 사상자들이 치워진 5시까지는 기록이 없는 거예요. 영상기록도 없고, 사진은 찾아봤는데, 사진은 단 한 장의 사진만 남아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 영상이 없다는 것이 너무나 의문스럽다 그래서 연구자들과 제가 한번 찾아 나서보는 내용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입니다.

▶ 김지윤 :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말하면 굉장히 좀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장면이고 기자라면, 촬영을 하는 사람이라면 꼭 담아야 되는 장면인 건데 그게 없다는 건 좀 이상하긴 하네요?

▷ 이조훈 : 예. 워낙 위급한 상황이라 위험해서 찍지 못했다.

▶ 김지윤 : 에이, 거기에 가 있는 기자들이 그런다고요?

▷ 이조훈 : 그리고 또 계엄군 죽여서 위험을 미리 알려서 피신하라고 했다, 그래서 피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 김지윤 : 거기 간 기자들이 그것 때문에 피할 것 같진 않은데요?

▷ 이조훈 : 제가 기자들하고 인터뷰를 했을 때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그런데 또 어떤 기자분들은 촬영을 하고 필름을 보냈는데 그것이 보안서에 의해서 검열을 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 김지윤 : 그렇군요. 그러니까 물론 그 이야기를 듣고 피하거나 아니면 잠시 다른 데 가 있거나 이런 기자분들도 있겠지만 꼭 그런 데 남아있는 분들이 있거든요, 기자 근성하고서는. 그래서 하나도 없다라는 것은 좀 이해가 안 되는데, 광주비디오라고 말씀을 하시니깐 사실 그 생각이 났거든요. 우리 옛날 영화 있잖아요, 《1987》. 옛날도 아니네요, 벌써 몇 년 전 영화인데. 거기에서 강동원 씨가 김태리 씨한테 보여주잖아요, 어디 데리고 가 가지고. 혹시 그게 광주 비디오?

▷ 이조훈 : 그게 광주 비디오입니다. 그렇게 설명을 하면 많은 분들이 금방 이해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아마 ’87년 무렵의 상황을 《1987》이라는 영화에서 만들었던 거고 강동원 씨가 故이한열 열사로 연기를 했었으니까 그렇게 보여주는, 대학가에서 많이 보여졌던 영화 그게 광주 비디오였죠.

▶ 김지윤 : 대학가에서 그래서 많이 보여졌던 영화. 그 광주 비디오가 영화 속에서 등장을 하는군요. 감독님도 보셨을 거 아니에요, 그러면? 저는 못 봤어요, 사실.

▷ 이조훈 : 그러셨어요? 저도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왔을 때쯤에 보게 됐는데, 저도 그 《1987》 영화의 김태리 씨처럼 너무 충격적이어서 끝까지 다 보지 못 하고 뛰쳐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 이조훈 : 나중에 다시 한 번 또 되돌려보면서 광주에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는 것을 그 비디오를 통해서 좀 알게 됐던 거죠.

▶ 김지윤 : 저는 사진만 좀 봤었는데 사진만 봐도 너무 끔찍해서 사실 비디오까지 볼 생각은 못 했어요.

▷ 이조훈 : 저도 어릴 때 광주에서 살았는데요.

▶ 김지윤 : 아, 그러시군요?

▷ 이조훈 : 광주에서 지내면서 중학교 이렇게 될 무렵에 터미널 앞에 가면 가판대에 사진첩이 꽂혀있었어요. 그런데 많이 아시는 그런 잔혹한 살해된 두 얼굴이 나온 사진들이 많이 걸려있어서 그걸 보고 지나치는데도 너무 힘들었거든요. 저도 비디오를 보면서 또 그게 힘들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김지윤 : 그러면 광주민주화항쟁이 있을 때 그때 우리 감독님도 광주에 계셨던 거예요?

▷ 이조훈 : 예. 예.

▶ 김지윤 : 그럼 경험을 좀 하셨겠네요?

▷ 이조훈 : 그런데 제가 그때는 초등학교 2학년이어서 그게 무슨 상황에서 일어난지는 몰랐는데 아버님이 마침 도청 앞에서, 학원에서 국사선생님을 하고 계셨어요. 그런데 계엄이 발포된 게 18일인데, 19일 날에도 수업을 하고 계셨거든요. 그런데 계엄군이 들어닥쳐서 왜 수업을 하냐고 아버님을 때려서 맞고 들어오셨던 기억도 있습니다.

▶ 김지윤 : 아니, 그냥 보내면 되지 왜 때린데요?

▷ 이조훈 : 그래서 학생들마저 끄집어내려다가 구타를 하고 했으면서 최근에 또 그 사진들이 기무사에서 이렇게 국가기록원으로 넘기면서 발표가 됐는데 그 학원에서 때린 사진을 밑에다가 뭐라고 적어놨냐면 난폭자들이 계엄군을 괴롭히길래 때리고 있다 이렇게.

▶ 김지윤 : 난폭자가 되신 거예요, 아버님이?

▷ 이조훈 : 그렇게 된 거죠.

▶ 김지윤 : 억울한데요. 국사선생님이신데?

▷ 이조훈 : 그렇게 됐습니다.

▶ 김지윤 : 혹시 그때 무슨 기억에 남는 일 이런 건 없으세요,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일이나?

▷ 이조훈 : 이제 휴교령이 내려져서 집에서 있다가 학교로 다시 돌아갔거든요. 학교로 돌아갔는데, 선생님께서 물어봤어요. ‘혹시 그동안 쉬는 동안 뭘 본 게 있냐?’ 그랬는데 뒤에 있던 한 학생이 손을 번쩍 들고 “‘전두환을 찍어죽이자’ 혈서를 쓴 플래카드를 봤습니다.”라고 말을 한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이 ‘쉿! 지금부터 네가 본 건 본 게 아니다. 절대 말을 하면 안 돼’ 이렇게 말씀을 하셔서 그 사건에 대해선 이야기를 하면 안 되는구나 생각하고 지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그런데 이번에 영화를 만드신 거잖아요. 계기가 좀 있으셨을 것 같아요?

▷ 이조훈 : 그런 기억들을 갖고 지냈는데 제가 하는 일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이다 보니까 그 문제를 어떻게든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잘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가 가진 기억에서 출발을 해 보자 그런데 저도 말씀드렸다시피 광주 비디오를 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됐으니까 그걸 도대체 누가 만들었길래,

▶ 김지윤 : 4시간 빠졌을까?

▷ 이조훈 : 나는 보게 됐을까? 그런 것들을 좀 뒤져보자 하다 보니까 광주 비디오를 만든 사람들도 알게 되고, 또 그것을 연구하는 분들이 뒤지다 보니 4시간이 없다더라 하는 것도 알게 돼서 같이 추적하는 다큐를 만든 거죠.

▶ 김지윤 : 언제부터 준비하신 거예요?

▷ 이조훈 : 작년 초에 광주시에서 40주년을 맞아서 광주브랜드영화라고 해서 광주항쟁 40주년을 기념할 만한 영화들을 제작 지원하겠다 해서 이렇게 공모를 내주신 거예요. 그래서 거기에 맞춰서 아이템을 집어넣고 1년 만에 완성을 한 거죠.

▶ 김지윤 : 그렇군요. 저는 광주분들을 가끔 만나면 자신들이 하는 분야에서 한 가지 그런 생각들을 갖고 계시더라고요. 뭔가 이렇게 풀리지 않은 숙제, 혹은 내가 무언가를 꼭 해야 된다 이거에 관련돼서 감독님처럼 영화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연구를 해야 된다든지 그런 마음들이 항상 계시더라고요.

▷ 이조훈 : 한강 작가가 그분도 전라도에 사셨는데, 《소년이 온다》라는 책 후기에서 그렇게 쓰셨어요.

▶ 김지윤 : 저는 사실은 그 책이 더 좋았어요. 《채식주의자》보다 너무 좋았어요, 그 책이.

▷ 이조훈 : 거기서도 자기가 광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 되는데 쉽게 할 순 없었다. 다만, 사례자를 만나면서 제대로 해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성심성의껏 글을 썼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런 마음이 광주 쪽에서 지내본 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있는 생각인 것 같아요.

▶ 김지윤 : 그렇군요. 그런데 또 광주에서 자라셨기 때문에 그 비주얼을 보시면서 더 괴롭지 않으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요.

▷ 이조훈 : 이번에 또 취재를 하면서 그 골목골목들, 제가 어릴 때 다녔던 길들을 다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면서 다녔거든요. 그런데 달리 보이죠. 비디오를 보고, 자료를 다시 보고, 그 현장을 그대로 가서 봐야 하고, 또 빌딩에 남아있는 총탄의 흔적이나 그다음에 그 당시에 피해를 입었던 분들을 만나서 증언을 듣고 하는 게 쉽진 않았습니다. 또 내용 자체가 광주 비디오라는 비디오물을 다루는 거기 때문에 그 자료들을 다 찾아보는 데 오는 것도 좀 고통이 있었어요.

▶ 김지윤 : 약간 트라우마도 좀 있으셨을 것 같은데요?

▷ 이조훈 : 그래서 좀 안 보려고 쉬었다가도 보고 쉬었다가도 보고 하다 보니까 좀 힘들기도 했었습니다.

▶ 김지윤 : 정신적으로도 좀 힘들 것이다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역시. 그런데 제가 한 가지 흥미로운 게 지난번 영화도 그렇고 직접 그 상황을 겪었던 분들이 또 영화에 나오시잖아요, 배우로. 이름을 걸고, 본인들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이렇게 나오시잖아요. 그런데 우리 감독님께서도 그 비디오 보고 또 다니고 사전조사 하고 하시면서 약간 힘들었다 하셨는데 그분들도 어쩌면 더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괜찮으셨어요?

▷ 이조훈 : 저희들이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그 사례자분들을 접근할 때는 일단 인터뷰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그런데 인터뷰 때 말씀을 편안하게 해 주시다가도 감정이 북받쳐오고, 고통스러움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떻게든 이것을 표현을 하고 싶어 하셨고, 특히나 광주 비디오라는 소재를 가지고 만났을 때 아무도 이 소재를 이야기를 해 주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고 왔느냐 하면서 기뻐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왕에 시작된 다큐멘터리니까 잘 만들자 하시길래 그러면 직접 한번 그 장소에 가셔서 그런 직접 하셨던 행위를 다시 한 번 재연해 보시는 건 어떠냐 제안을 했는데 되게 좋아하셨어요.

▶ 김지윤 : 좋아하셨어요?

▷ 이조훈 : 즐기고 하시고 한 출연자분은 저희들이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파출소까지 들어가서 자기가 그 당시에 겪었던 상황을 파출소로 피신했던 상황까지 직접 재연하시고 하는 일까지 해서 아주 영화가 흥미롭게 나왔었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모쪼록 그 경험이 예전에 아팠던 기억들을 한번 씻어내는 그렇게 됐으면 좋겠네요. 그 심리치료 할 때 그런 것도 쓰잖아요. 그래서 그런 게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좀 드는데, 그러면 영화 하시면서 이렇게 만났던 분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분 혹시 있으면?

▷ 이조훈 : 그 질문들을 많이 받았는데 사실은 영화에 출연하신 분들은 어떻게든 이 영화에 출연하시게 됐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출연을 못하신 분들이 있거든요. 그분들이 더 안타깝게 기억에 남아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뉴욕에서 만든 광주 비디오를 보면 부부 성우가 비디오의 더빙을 해 주시거든요. 그런데 그중에 여성 성우분은 한국에서 왈순아지매라는 역할로 배우 활동도 하셨던 분이에요.

▶ 김지윤 : 왈순아지매 저 알아요. 만화? 되게 유명한 만화인데?

▷ 이조훈 : 그거를 드라마로 만들었던 곳에서 드라마에 출연하셨던 故이유정 씨라고 계신데, 그분이 성우 녹음도 하시고 미국에서 활동하시다가 한국에 들어와서 드라마 촬영을 가셨는데 윤여정 선생님하고 같이 숙소에 계셨대요. 그런데 그 숙소가 불이 나버렸어요. 그래서 사고로 그때 돌아가셨거든요. 그래서 그 안타까운 사연들이 있었는데, 그거까지 영화에 집어넣기에는 이야기가 멀어서 넣지 못했는데 그렇게 좀 사연이 있는 분들이 계셨는데 만나지 못했던 게 좀 기억에 남는 인터뷰입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만나지 못한 분이 더 기억에 남는다라는 말씀을. 그런데 왠지 와닿는 것 같아요, 그 말이. 그러니까 만난 분들보다 만나지 못한 그런 분들, 담지 못한 그런 사연들이 더 마음에 남는다라는 말씀이신데요, 지금 청취자분들이 문자 많이 왔어요. 스카페이스님, 저도 이 영화 좋아했는데. 어린시절 방학을 맞아 할아버지댁을 가려고 광주터미널에 가면, 그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그런 사진들을 보셨다고 해요. 그래서 어린시절에 각인된 이미지는 5.18을 왜곡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만든 각인된, 왜곡된 이미지잖아요. 그 생각을 하면 정말 미워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을 하시고, 또 김텐님 ‘개봉 완전 기대됩니다. 작은 영화들도 관을 많이 잡을 수 있길 바랍니다.’라고 하시고요, 또 허리띠졸라맨개미님, 왜 이렇게 와닿죠? ‘7월 16일 개봉하네요. 꼭 봐야겠어요.’ 그새 또 찾아보셨어요. 이렇게 해서 좀 홍보가 돼서 그래도 좀 많이 좀 봐주시고 그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고 김텐님이 아까 보내셨던 문자 중에 다른 문자도 하나 보내주셨어요. 이게 참혹한 장면이 좀 많을 것 같은데 12세 관람가라고. 편집을 굉장히 애쓰셨을 것 같다라고 하시는데, 어떻게 괜찮아요?

▷ 이조훈 : 저도 어릴 때 그런 기억이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잔인한 장면들은 많이 빼려고 노력을 했고요, 기존에 다른 5.18을 다룬 영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공개됐던 장면들 위주로만 편집해서 넣었어요. 그런 영화들도 12세를 받았기 때문에 저희들도 그렇게 신청을 했던 거고, 다른 의미에서 보면 12세쯤에 저도 광주항쟁을 알게 됐었고, 광주항쟁 당시에 거리로 뛰쳐나왔던 시민들 중에는 그렇게 어린 초등학생, 중학생 형들도 있었고요. 그중에는 또 사망한 분들도 있었고, 그래서 역사의 현장에서 이미 존재했던 나이대였기 때문에 12세 관람가가 문제가 될까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그래서 어린시절에 저도 광주항쟁을 겪었긴 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일단은 그것을 정보로 해 뒀다가 나중에 역사를 알게 되면 그것들을 재정립하면서 사회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기를 수 있겠다 싶어서 12세도 볼 수 있게끔 생각한 것 같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요새 굉장히 잔인한 영화들이 워낙 많아서 사실 제가 영화 잘 못 봐요. 너무 현실적으로 잔인하게 나와서. 그러면 감독님 말씀을 믿고 저도 보면 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40년 전에 나왔던 광주 제작하시면서 돌아다니면서 지금 또 많이 변했잖아요. 그리고 시민들의 의식도 변하고 예전 여론조사랑 요새 여론조사를 비교를 해보면 광주항쟁에 대한 이야기 이런 거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가? 굉장히 많이 변했어요, 불과 한 10년, 20년 사이에. 그래서 지금은 민주화항쟁으로 인식한 분들이 훨씬 많고,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굉장히 소수가 됐죠, 그런 분들은. 그런 걸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 이조훈 : 그러니까 광주항쟁이 국가를 대리하는 군인들이 와서 시민들을 죽이는 잔혹한 현장들을 보고 시민들이 거리에 나와서 항쟁을 했던 역사 현장이었잖아요. 그들이 국가는 우리를 보호해 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공격하더라라고 하면서 시민이 시민 스스로를 보호하자라는 정치적 각성을 하는 계기가 된 사건이라고 보는 의미에서는 시민의 정치성 확보라는 근대적인 의미가 있다고 봐요. 그런 것들이 역사적으로 계속 부정 당해오다가 시민들이 스스로 광주 비디오를 돌려보면서 진실을 찾고 그것들을 알리는 데 기여를 하고 스스로가 거리에 나와서 ’87년 때도 촛불을 들고 민주화를 요구를 했거든요. 그것들이 지금의 촛불집회까지도 계속 이어지면서 시민 스스로가 깨어나면서 정치적 주체로 나서려고 하는 노력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보거든요. 그런 면에서 40년 전에 곡해되고 왜곡됐었지만 지금은 시민들이 스스로 진실을 찾아내면서 시민사회의 성숙함을 보여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좋은 발전이라고 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가해를 한 사람들을 아직도 처벌이 제대로 되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그런 것들을 더 저희들이 시민의 눈으로 지켜보면서 처벌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라는 의미에서 이 영화를 만들었으니까 그게 좀 기폭제가 돼서 이런 시민의 성숙이 더 자라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입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 차기작 소재 좀 해 주세요.

▷ 이조훈 : 사실은 다른 작품이 10년 동안 찍은 다큐멘터리가 있어서 그걸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걸 취재하다 보니까 사라진 4시간에서 이 영화에 보여주지 못한 게 너무나 많아요. 그래서 ’88년에 5.18청문회가 있었는데, 그때 참여했던 계엄군들이나 전두환 씨를 비롯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거짓말들을 해왔거든요. 그래서 저희들이 가제로 ‘위증’이라는 제목을 두고,

▶ 김지윤 : 위증?

▷ 이조훈 : 그들이 어떻게 청문회에서 거짓말들을 해왔고 지금까지도 그 거짓말이 국방부와 연결이 되면서 그 진실을 은폐하고 있는가라는 것을 좀 밝히는 것을 영화로 만들어보면 어떻게 기획하고 있습니다.

▶ 김지윤 :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오늘 《광주비디오: 사라진 4시간》의 이조훈 감독님하고 말씀 나눠봤는데요. 뭔가 숙연해지면서도 편안한 마음이 드는 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광주 생각을 하면 항상 미안하고 죄스럽고 그런 마음이었는데, 이제는 그래도 조금 우리가 명예를 회복시켜 드리고 그런 과정에 있기 때문에 조금은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게 또 우리 감독님 같은 분들이 자꾸 이렇게 진실을 세상에 알려주시니까 그 덕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독님, 오늘 말씀 감사드리고요. 영화, 사실 대박나세요라고 말을 하기가 되게 민망하잖아요, 독립영화 같은 경우는, 우리가. 좋은 성과 있으시기를 기원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이조훈 : 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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