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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_오늘도_연뮤] 무대 위 시간은 거꾸로 간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

조주연 기자

piseek@tbs.seoul.kr

2024-06-04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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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나서 흘러가는 시간을 무대에 펼치고,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 또한 사랑인 순간이 무대를 채웠다.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어려지는 남자 벤자민 버튼의 이야기가 뮤지컬로 태어났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 '블루'는 한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묻는다. 벤자민. 익숙한 이름이지만, 벤자민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기억하지는 못하는 블루에게 아이는 벤자민과 블루가 처음 만났던 순간을 들려준다. 9살 블루의 노래에 이미 노인인 벤자민이 귀 기울인다. 어느덧 중년 외모가 된 벤자민, 블루는 시카고에 공연을 하러 왔다가 클럽 마마에 들르게 되고, 둘은 오랜만에 재회한다. 그리고 블루의 시간은 나이듦으로, 벤자민의 시간은 어려짐으로 흐르고, 노인과 아기의 모습으로 그 둘은 이별한다.

벤자민의 이야기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영화 덕분에 많은 관객에게 이미 익숙하다. 하지만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작가 F. 스콧 피츠레럴드의 소설 속에서 그려낸 세상은 뮤지컬 무대에서 색다른 흐름으로 펼쳐져 뻔하지 않다.

가장 눈이 가는 것은 목각인형, 퍼펫(PUPPET). 휠체어에 앉은 노인부터 누군가의 품에 안긴 아기까지, 무대 위에선 시간의 흐름을 CG로 표현할 수 없다. 대신 각기 다른 나이대의 퍼펫이 그 역할을 대신한다. 벤자민 역할의 퍼펫과 벤자민 역할의 배우는 때론 한 몸처럼 움직이고, 또 때론 각자의 움직임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벤자민 역할을 맡은 김성식 배우는 프레스콜에서 했던 '퍼펫에서 빠져나오는 것', '퍼펫과 합쳐지는 부분'이라고 이 특징을 표현했다. 배우에겐 상대 배우뿐만 아니라 '퍼펫'이라는 낯선 물체와도 합을 맞춰야 하는 추가 미션이 부여된 셈이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 또한 색다른 볼거리고 신기한 몰입의 계기가 된다.

퍼펫의 키와 얼굴은 계속 변해가고, 배우들의 목소리와 행동에서도 세월의 변화가 묻어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블루에 대한 벤자민의 사랑이다. 극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는 의미로 쓰이는 '스윗스팟(SWEET SPOT)'이라는 단어는 극의 대사에서, 또 넘버의 가사에서 계속 등장하며 관객들도 벤자민과 함께 그 스윗스팟의 순간을 기다리게 만든다. 벤자민과 블루의 시간은 계속 어긋나다 30대의 한 지점에서 만난다. 벤자민에게 스윗스팟은 블루와의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30대 그 순간일까. 조광화 연출은 "스윗스팟을 기다리는 시간도, 스윗스팟이 지나가 버린 후의 시간도 모두 소중하다"고 말한다. 어쩌면 어긋난 것은 그들의 외형이었을 뿐, 그들의 시간은 언제나 함께 자라나고 성숙해지는 같은 방향으로 가며 스윗스팟을 과정 곳곳에서 만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김재범·심창민·김성식(벤자민 역), 김소향·박은미·이아름솔(블루 역), 김나윤·김지선(마마 역), 민재완·박광선(제리 역), 강은일·송창근(스캇 역), 구백산·이승현(모튼 역), 신채림·박국선(머틀 역) 등 16명의 배우와 퍼펫'들'이 무대에서 흐르는 시간을 함께한다. 극작·작사·연출은 조광화, 작곡은 이나오, 협력 연출·안무는 심새인이 맡았다. 퍼펫 작가 문수호도 제작진으로 함께 했다.

나무 위주로 제작된 무대와 퍼펫을 포함한 각종 소품, 부드러운 조명은 극 전반에 따스함을 선사한다. "영원한 것은 없고, 시간은 어긋나지만, 그럼에도 그들 사이엔 사랑이 있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담아낸 뮤지컬 '벤자민 버튼'은 오는 6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뮤지컬 벤자민 버튼 포스터 <제공=EMK 뮤지컬 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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