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인싸_파일럿] 14억 인구 인도, 개표 n시간 비결은?

조주연 기자

piseek@tbs.seoul.kr

2023-11-16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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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라는 단어를 들으면, 투표소에서 투표하는 모습과 투표용지를 하나하나 펼치며 개표하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대체로 투표하는 시간만큼, 개표하는 데도 시간이 들기 마련이죠.

그런데 투표 기간은 40일에 달하지만, 개표는 하루 만에 끝나는 나라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사는 땅, 인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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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14억의 인도는 어딜 가든 사람이 참 많습니다.

투표권이 있는 사람, 즉 유권자도 많죠.

한반도의 15배에 달하는 땅에 100만 개가 넘는 투표소가 세워지고, 9억 명이 투표합니다.

인도는 100% 전자 투표를 실시합니다.

투표소에 비치된 전자투표기(EVM)에 후보자의 번호, 이름, 정당 상징이 나열돼 있습니다.

원하는 후보자 옆 파란 버튼을 누르면 끝입니다.

방식은 상당히 간단하지만, 그 속에 숨겨진 과학은 단순하지 않습니다.

전자투표기, EVM(Electronic Voting Machine)은 1980년대 처음 발명됐습니다.

이후 인도 선거관리위원회, 인도 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IIT, 공공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계속 발전했고, 사용 범위도 점점 넓혀 2004년 총선에서는 모든 선거구에서 EVM으로 투표했죠.

종이에 기표하는 전통적인 방식보다 개표 시간도 단축됐고, 부정 시비도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습니다.

전자 투표도 해킹이라든지 부정 투표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의혹, 물론 있지만 인도의 선거관리위원회는 EVM이 그런 '부정'한 시도를 모두 막아낼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EVM은 네트워킹 구성 요소가 없는 독립적인 기계입니다.

무선 통신, 인터넷 인터페이스 관련 장치가 하나도 없어서 외부에서 원격으로 조작하는 것이 불가능하죠.

투표 결과도 중앙 서버가 아닌 각각의 전자투표기 안에 저장되고, 전자 투표기는 투표가 끝난 즉시 밀봉됩니다.

EVM은 배터리로 구동되기 때문에 외부 전원 케이블을 통해 네트워크에 연결되고 해킹될 위험도 없습니다.

전력 공급이 불충분한 지역에서도 가능하고요.

EVM은 제어 장치(CU)와 투표 장치(BU)로 구성되는데 두 장치 모두 특정 후보에 투표한 것으로 바꾸거나, 여러 번 투표하는 등의 변조를 방지하는 프로토콜도 갖추고 있습니다.

유권자가 버튼을 누른 시점, 선택이 완료된 시점 등 모든 순간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시계가 내부에 장착돼 있죠.

이렇게 전자 투표를 함으로써, 한 번의 총선마다 약 1만 톤의 종이가 절약되고, 10만 그루의 나무를 베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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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선거를 가능하게 해주는 과학이 하나 더 있습니다.

유권자 수가 9억 명인데, 선거인 명부 관리도 쉽지 않겠죠?

한 명이 투표소에 여러 번 와서 투표하는 일이 없도록 막아야 하는데요, 이때 사용되는 것이 Indelible ink, 지워지지 않는 잉크입니다.

투표하고 나면, 검지 손톱, 손가락에 보랏빛 잉크를 칠해줍니다.

잉크의 주성분은 질산은(AgNO3)인데 질산은 피부 단백질과 반응해 산화되고, 은 이온은 은으로 환원되면서 어두운 자국을 남기게 됩니다.

이 자국, 표식은 비누나 세제, 어떤 화학물질로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피부에 해로운 건 아니고 며칠, 길면 몇 주 후에 저절로 사라집니다.

사라졌을 땐 이미 투표 기간은 끝났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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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선거관리위원회 자료를 보면, 내년 총선에 참여하게 되는 유권자는 9억 4,500만 명입니다.

5년 전 2019년 총선보다 얼마나 더 발전된 기술이 선거 기간에 펼쳐질까요?

인싸 파일럿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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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조주연
편집 김은진
그래픽 김지현
자막 강은지

※ 본 기사의 취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주최 ‘KPF 디플로마 인도 전문가 교육 과정'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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